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커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콜먼의 대학 후배로 MMA에 진출한 계기도 콜먼의 추천이었다. 레슬링부에 함께 있었는데 커의 말로는 자신이 콜먼보다 테크닉은 낫다고 한다. 물론 기술이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고도 덧붙였지만. 90년대 후반의 위상은 대단했다. [[에밀리아넨코 효도르|60억분의 1의 사나이]]와 [[케인 벨라스케즈|70억분의 1의 사나이]]란 별명의 프로토타입인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가 그를 소개하는 수식어였다. 90년대 초반의 [[호이스 그레이시]]나 00년대의 [[에밀리아넨코 효도르]]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. UFC에서 콜먼의 뒤를 이어 무지막지한 G&P로 명성을 떨쳤으며 PRIDE에서는 '영장류 최강'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'북의 최종병기' 이고르 보브찬친과 [[라이벌]]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. 그러나 상대전적은 1패 1무효로 라이벌이라기보단 어째 상성관계 정도로 보인다. 1무효 조차도 [[시마다 유지]]의 삽질때문이었다는걸 따지자면 사실상 2패. PRIDE 27의 야마모토 요시히사와의 경기에서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다가 링바닥에 머리를 찧고 기절하고 말았다. [* 이 경기의 승자가 2004 헤비급 그랑프리 출전권을 획득하는 경기였다. 야마모토 요시히사는 Rings 일반인 선발 테스트 1기 출신이었는데, [[마에다 아키라]]가 총애하는 직속 제자였다.오죽하면 발리 투도 제팬에서 Rings 대표로 [[힉슨 그레이시]]를 상대하게 했을 정도였으니..그러나 그렇게 죽어라 밀어줬는데, Rings에서는문지기보다 못 했다. 그럼에도 일본 선수 중에 몇 안 되는 헤비급이었기 때문에, 다카다 도장으로 이적하면서 PRIDE 측에서 야마모토를 밀어주려는 의도로 매치업을 잡은 것이다.] 커는 '태클을 하려다 실수했다'라고 말했고 야마모토는 '난 DDT를 걸었을 뿐'이라는 말을 남겼다. DDT 그립도 안 잡혀서 빼박 커의 말이 맞는거다.[* 야마모토 요시히사는 이 경기 이후 어떠한 강자가 와도 DDT로 이겨버리겠다는 허세를 부렸다. 이를 눈꼴 사납게 본 타카다 노부히코에 의해 [[미르코 크로캅]]과 경기를 하게 되는데 결과는...희대의 관광게임. 로우킥을 맞은 뒤 '이게 다야?' 라는 식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크로캅을 도발했고 열받은 그는 주구장창 로우킥만 때리며 요시히사의 허벅지를 변색시켰고 하이킥이 막히자 또 도발을 하는 요시히사를 연속 사커킥으로 저 멀리 보내버렸다. 참고로 요시히사가 도발을 할 때 전 세계 해설들은 '어...저럴 때가 아닐 텐데요...' 라는 반응을 보였다.][* 야마모토 요시히사는 본래 개그맨 지망생이었는데, Rings 테스트로 격투기에 입문한 케이스. 믿기 어렵겠지만 청소년 시절에는 국내 유도 대회에서 우승도 하는 등 나름 운동신경도 좋았다. 그러나 다카다 노부히코가 그의 재능을 알고, PRIDE로 이적시켰으며, 인터뷰로 어그로를 끌라고 할 정도. 근데 마크 커와 경기 후 인터뷰는 경기 내용도 그렇고, 도를 넘은 어그로라서 헤비급 그랑프리 출전을 불허하고 크로캅을 이기면 출전권 획득이라는 명목으로 경기를 잡은 것이었다. --토사구팽--] 2009년의 킹 모전 이후로는 은퇴한 상태이며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. 시작한지 불과 7개월만에 이달의 세일즈맨에 올랐는데, 격투기로 쌓아놓은 유명세의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. 그는 대인 친화력이 강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